역사학자 전우용씨 (사진=전씨 페이스북)
역사학자 전우용씨 (사진=전씨 페이스북)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말에 발작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친일파의 의식이 아직껏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1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처럼 주장하고 “지금 문제는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파를 만든 의식’이다. 특별한 상황이 다시 올 경우, 국민을 분열시키고 민족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의식이다”라고 했다.

전씨는 과거의 친일파와 현재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식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첫째는, 정의 관념이 결여된 힘 숭배주의다. 전씨는 “저들(과거의 친일파와 현재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정리한다. 저들은 침략자의 죄를 묻지 않고, 침략당한 자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고 했다. 강자는 어떤 짓을 해도 괜찮고 약자는 어떤 짓을 당해도 싸다고 믿기 때문에, 강자에겐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잔인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친일 의식과 현재의 갑질 문화가 모두 이런 생각을 기초로 한다고 전씨는 말했다.

둘째는, 약자 혐오와 엘리트주의다. 전씨는 “저들은 힘만을 숭배하기에, 약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저들의 입에서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저들은 모든 사회 문제가 약자들이 분수에 넘는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3·1운동 때 이완용이 일본 통치의 야만성은 외면하고 ‘조선인의 저항’만을 문제 삼았던 것이나, 지금의 기득권세력이 재벌의 전횡은 외면하고 최저임금만을 문제 삼는 것은 완전히 같은 의식의 소산이란 것이다. 전씨는 “약자에 대한 배려나 지원에 대해 말하면, '빨갱이'나 '좌파'라고 매도하는 것도 과거의 친일파와 현재의 기득권 세력이 공유하는 태도”라고 짚었다.

셋째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전씨에 따르면 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처음 구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각국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생각을 바꾸어 일본인들은 스스로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유럽인의 관점에서 다른 아시아인들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이후 일본은 어떤 때에는 자기들이 아시아의 대표인 것처럼 행세했고, 또 어떤 때에는 아시아인이 아닌 것처럼 처신했다.

이와 관련해 전씨는 “한국의 친일파들은 일본인들의 이런 아시아관을 축소해 ‘한국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한국의 친일파들)은 일본인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자기들이 한국인의 대표인 것처럼 행세했고, 한국인들을 대할 때에는 자기들이 일본인인 것처럼 처신했다”면서 “그들은 자기가 약소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혐오해 일본인이 되기를 열망하면서도, 조선에서 누리는 특권은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득권세력 중에 '의도적' 이중국적자가 적지 않은 것도 이런 의식의 소산이고, 이른바 태극기 부대 집회에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일장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전씨는 “저들은 태극기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낀다”면서 “약소민족의 일원이라는 자의식을 보강할 힘을 갈망하기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권위를 외부에 의탁하려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들은 스스로 '애국세력'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진정 사랑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를 것”이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엘리트의식을 가지면, 자기 '사익'이 곧 '국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과거에 친일파를 만들었으며 지금껏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 자체를 청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친일 잔재 청산’은 절대로 녹록한 과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힘보다 정의가 앞서는 나라,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나라, 즉 ‘정의로운 사람의 나라’를 만드는 게, ‘친일 잔재 청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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