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VS 납품실적 없는 BHI사가 공급업체로 선정

 
신고리 3호기 [출처=한수원]
신고리 3호기. [출처=한수원]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원자로 감압설비인 격납건물여과배기계통(CFVS)의 공급자로 무자격 업체가 선정됐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이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납품실적을 무리하게 짜 맞췄다는 주장이 나왔다.

CFVS는 원자력발전소에 중대한 사고로 격납건물 내부 압력이 높아져 파손 위험이 있을 때 원자로 내부의 방사성 물질을 여과해 대기 중으로 방출함으로써 심각한 피해를 막는 설비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에 부재한 CFVS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국산화 기술개발 과제가 추진됐다. ㈜미래와도전(CFVS 설계사)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원자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4년간 진행한 CFVS 기술개발 정부과제는 지난 2017년 5월 31일에 종료됐고, 기술용역 계약업체였던 BHI가 CFVS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CFVS 공급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해 9월부터다. 당시 한수원에 440억원 규모인 표준형 원전 12기 CFVS 제작구매 계약 해제를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인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대상 제품 납품실적이 있어야 공급자 등록이 가능함에도 납품실적이 없는 BHI가 공급자로 낙찰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이 이런 의혹을 거론하자 한수원은 BHI에 납품실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BHI가 스위스 시험기관(PSI)에 제공한 ‘유사품’을 납품실적으로 제출했으며, 원자연에서 종합성능검증시험을 수행해 조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수원측은 원전에만 사용하는 특수품목인 경우 공인기관 성능시험에 합격하거나, 한수원 입회 아래 성능시험을 통과하면 이를 납품실적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리포스트코리아>가 입수한 한수원 내부자료를 확인한 결과, 원자연에서 검증한 '유사품' 성능시험 결과는 내용에 포함돼 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정감사 당시 이 자료를 제시하며 “(BHI가) 납품실적이 없더라도 공인인증시험(원자연)에 합격했기에 받아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자연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우린 공인인증기관이 아니며 시험증명서를 발급해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원자연 관계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자연은 인증기관이 아니라 연구기관이다. '미래와도전'의 요구로 관련 데이터를 제공한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원자연 주장대로라면 한수원이 공급자 선정 근거로 제시한 심사자료는 공인인증기관이 발행한 것이 아니므로 허위로 볼 수 있다. 이는 국정감사장에서 한수원 사장이 허위 자료를 근거로 무자격 업체를 두둔한 셈이 된다. 

CFVS는 멜트다운 등 원전 중대사고 발생시 원자로 파손을 막기 위한 감압설비다. 압력이 올라가면 김을 빼주는 압력밥솥과 같은 장치다. 한수원이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감압설비 공급업체를 이토록 허술한 절차를 거쳐 선정한 것이다. CFVS 국내 기술 개발이 사실상 사업비를 나눠먹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전문가는 CFVS 효용성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원자력안전연구원(이하 원안연)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원전 안전 강화를 위해 편성된 예산은 총 1조1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CFVS 구매 및 기술개발을 포함한 중대사고 관련 예산은 6000억원 가량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회 공동대표는 “원자연이 공인인증기관이 아니라면 무자격 업체가 CFVS 공급업체로 선정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관계자는 “내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입장도 해명도 밝히지 않았다.

한 대표는 미래와도전의 연구과제가 끝나자마자  BHI를 급하게 CFVS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납품은 물론 실물 제작 경험도 없는 BHI가 19일 만에 공급자로 등록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때 지적한 바 있다. 

BHI는 공급자 입찰 공고가 나기 5개월 전인 2017년 5월 11일 한수원에 Q등급 보조기기 공급자로 신청했다. 한수원은 이후 불과 19일 만에 심사를 마쳤고, 같은 달 30일 등록이 완료됐다. 단순 부품이 아닌 주요 시스템 설비로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한 대표의 의견이다. 

납품실적 인정 근거가 된 제품이 '시제품'이 아니라 '유사품'이란 점도 BHI의 무자격 의혹을 키웠다. 산업부의 ‘에너지 R&D 중장기과제(2014~2017)’ 공고문에는 최종결과물이 '여과배기계통 시제품'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협약서와 향후 사업계획서, 과제 최종보고서 등에는 실물의 수십분의 1 크기로 줄인 형태의 설비(유사품)로 시험한 결과만 나와 있다.

시민단체도 이 같은 문제점들에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과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지난해 11월 ‘원전에 설치될 실물 크기 시제품 성능 검증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이유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보통 3개월이면 감사결과가 나오는데, 내부 검토가 길어진다고 해서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CFVS 사업 설계자인 미래와도전에도 의혹이 제기된다. BHI과 기술용역 계약을 맺고 있는 미래와도전은 이른바 ‘핵피아’로 알려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교수들이 주주로 있는 업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 강화 요구가 높아지자 산업부는 국내 전 가동 원전에 CFVS 설치를 결정하고 2013년 ‘에너지 R&D 중장기과제'를 추진했다.

이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이 '중대사고시 원자로건물 파손방지를 위한 여과 배기계통 개발' 연구과제를 발주하고, 미래와도전 등이 구성한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낙찰됐다. 정부 출연금 210억원 중 128억원을 미래와도전이 가져갔다. CFVS 사업 설계는 미래와도전, 연구부문은 원자연, 기술개발 부문은 BHI가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연평균 매출액 10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던 업체가 연구용역을 맡은 배경에 연구과제를 발주한 에기평의 당시 고위직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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