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영광원자력발전소 '부지사전승인처분' 취소 여부 갈등

‘환경쿠즈네츠 곡선’이란 게 있다. ‘∩’자 모양으로 생긴 이 곡선은 국가가 일정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면 환경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염된 환경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환경분쟁이 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환경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그린포스트코리아>와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환경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혹시 문제는 없는지, 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한다. 구성은 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형태로 각색했다.[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1996년 전라남도 영광. 한국전력공사는 영광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사업 시행에 나섰다. 이에 특정 부지를 건설부지로 확정,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관련 ‘부지사전승인처분’을 받았다. 승인처분의 골자는 해당 부지에 굴착·무근콘크리트공사 등의 사전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근 마을 주민들이 반대했다. 방사능물질에 의한 재해 가능성, 원전냉각수 온배수로 인한 해양환경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주민들은 과학기술처 장관을 피고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요지는 부지사전승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전력공사는 피고인 과학기술처 장관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영광원자력발전소
영광원자력발전소

주민들

방사능물질로 인한 피해가 불 보듯 뻔합니다. 또 마을에는 어민들이 많이 살아요. 원전냉각수 온배수로 인해 고기가 안 잡힐 수도 있죠. 그런데 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온다고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과학기술처 장관·한국전력

원자력법 등 관련 법들을 모두 살핀 결과 불법적 요소는 단연코 없었습니다. 부지사전승인제도라는 게 뭔가요? 원자로 및 관계 시설의 부지로 적법한지 여부 등을 살펴서 건설 전에 미리 승인을 받는 제도잖아요. 우리는 적법성을 인정받은 거에요.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1·2심 재판부(1997년 10월)

주민들이 방사능물질로 인한 재해로부터 보호돼야 할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부지사전승인처분의 근거 법률인 원자력법의 각종 사항들을 살펴봐도 이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바가 있지요. 원전냉각수 순환시 발생하는 온배수에 따른 피해도 물론 받아선 안 될 테고요.

 

그런데 원전냉각수 관련해서 말입니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이 그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들로 보이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원자력법에서도 원전냉각수 온배수에 따른 해양환경침해를 승인 여부의 변수로 두고 있진 않습니다.

 

원자력법의 건설허가 및 부지사전승인의 기준에 관한 규정, 그리고 환경영향평가법의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규정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직접적·구체적 이익 가운데 원전냉각수 온배수에 관한 사항은 포함이 되질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번 재판부는 본 소송에 대한 원고적격이 없다고 판결, 사건을 되돌려 보내겠습니다.

 

대법원(시기 불분명)

원자력법 등 관련 법령을 종합해서 살펴본 결과 앞선 재판부의 판단은 다소 편협했던 면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 대상 지역 안의 주민들은 방사성물질 외 다른 원인에 의한 환경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거든요.

 

따라서 이번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은 원고적격을 갖춘 것이랍니다.

 

하지만, 부지사전승인처분은 건설허가 전에 신청자의 편의를 위해 '일부'요건을 미리 심사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최종적으로 건설허가처분이 나오면, 이 사전승인처분은 그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훗날 최종 허가처분이 나오면 그때 다투는 게 옳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재판부 역시 해당 건을 되돌려 보내겠습니다. 

이승태 변호사
이승태 변호사

이승태 변호사
 

환경 등의 피해를 이유로 어떤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는 통상 원고에게 소송의 법률상 이익이 있는지를 따진답니다. 이에 따른 ‘원고적격’ 여부가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되지요.
 

이번 판결을 보면 방사능물질 등에 의한 생명·신체의 안전침해, 온배수로 인한 환경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이 원고로서 적격한지를 두고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관련 법인 원자력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사항 안에 온배수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원고적격을 못 갖췄다고 봤어요. 반면, 대법원은 주민들이 어떤 식으로든 환경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안에 살고 있으니 원고적격이 있다고 본 거고요.
 

다만, 대법원은 부지사전승인처분의 적법성은 추후 최종 건설허가처분 결과를 보고 다툴 사항이라며 각하했는데 이는 따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해당 판결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건설허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은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다가, 최근에야 비슷한 일이 벌어졌거든요.

 

2016년 9월 그린피스 외 시민 559명이 신고리5·6호기의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했어요. 그리고 지난달 14일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죠. 결과는 기각.

 

신고리5·6호기에 대한 소송도 원고적격이 일부 문제가 됐습니다. 이 소송에 따른 법률상 이익이 있는 이해당사자를 과연 어디까지로 볼지를 두고서죠. 원고인 시민 559명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거든요.

 

법원은 원자로 주변 80㎞ 이내에 거주하는 이들만 원고적격이 있다고 봤답니다. 앞선 판례를 따른 셈인데, 원고는 항고에 나섰지요. 고로, 아직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아쉬운 점들이 남는 대목입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를 보자고요. 원전사고 발생 시 전 국민이 피해를 입게될 수도 있단 사실을 우리 모두 알게 됐잖아요. 원전사고 발생시 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사는 주민들만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 비춰 신고리5·6호기에 대한 항소심 결과를 지켜봐야겠습니다. 현재 시대적 흐름은 국민의 안전을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엄격한 법을 적용하는 추세인데 어떤 결론이 맺어질지 주목됩니다.
 

◇이승태 변호사는 제40회 사법시험 합격(1998년), 현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2015.2~2017.2),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2014.11~현재), 한국환경법학회 정회원(2015.7~현재), 환경부 고문변호사(2018.4~현재), 국토교통부 고문변호사(2014.1~현재)로 역임 또는 활동중이다.

이 콘텐츠는 환경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환경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chesco12@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