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책읽기] 돈뭉치로 뚫린 안전…탈원전이 답이다
[화목한 책읽기] 돈뭉치로 뚫린 안전…탈원전이 답이다
  • 박소희 기자
  • 승인 2019.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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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 잔혹사' -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김성환·이승준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21일 출간 | 252쪽 | 사회문제
김성환·이승준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21일 출간 | 252쪽 | 사회문제

 

이 책의 한 단락 : 원자력의 경제성에 핵연료 폐기물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원전의 전기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선·송전탑이 번번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막대한 사회적 갈등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원전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원자력은 인간의 ‘욕망’을 자양분 삼아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이제 원자력이 과연 인간에게 축복인지 반대로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재앙의 씨앗인지 따져봐야 할 순간에 처해 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2012년 2월 4일 고리 1호기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12분간의 정전으로 냉각수 온도가 21.4도나 상승했다. 삼중 전력공급 체계라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주장은 헛말로 드러났다. 비상발전기 1대는 정비중이었고, 다른 1대는 작동이 안 됐으며, 수동 디젤발전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돌리지 않았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발전소 전원이 끊겨 생긴 문제였다. 작업자 실수, 비상설비 미작동, 사고 은폐가 동시에 일어나며 국내 원전 안전에 대한 첫 경종을 울린 사고였다. 

◇ 돈뭉치로 뚫린 원전 안전

2013년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멈춰서며 유착비리라는 한수원의 '고질병'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원전은 수백만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돌아간다. 중고 부품을 새 부품처럼 납품하고 부품 품질인증서까지 위조하는 한수원의 납품비리 사건이 터졌다. 조작된 시험성적서가 2010건이었다.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가 작업자 실수와 안전불감증 때문이었다면, 이듬해 드러난 원전 부품 납품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의 배경엔 ‘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발생한 전력난은 사실상 비리에 의한 인재였다. 원전 안전이 돈에 의해 뚫린 것이다.

당시 김종신 전 사장, 송아무개 부장 등 한수원의 사장부터 말단까지 ‘원전비리 쓰나미’에 휩쓸려 줄줄이 구속됐다.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받은 뇌물 액수는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2014년 검찰 중간발표결과에 따르면 23개 업체와 27명이 기소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수법이 더욱 은밀해졌을 뿐 유착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게 한수원 납품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동뭉치와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오가는 비리의 온상. 정부(산업부, 한전, 한수원), 학계, 대기업, 협력업체, 언론이 얽혀 있는 이 운명공동체를 ‘원전마피아’ 혹은 ‘핵마피아’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와 한전이 만든 수도공고를 이들의 숙주로 꼽는다. 

◇ 아직 잔혹사는 진행 중

2018년 9월 한수원에 표준형 원전 격납건물여과배기계통(CFVS) 제작구매 계약 해제를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됐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대상 제품 납품 실적이 있어야 공급자 등록이 가능하나 납품 실적이 없는 BHI가 공급자로 낙찰됐다는 것. CFVS는 격납건물이 터지지 않도록 일정 압력을 유지하는 설비로 압력밥솥을 생각하면 쉽다.

한수원은 납품실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업체가 스위스 시험기관에 제공한 '유사품'을 납품 실적으로 심사했으며,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종합성능검증시험을 수행해 조건을 충족했다는 것이다. 원전에만 사용하는 특수품목인 경우 공인기관 성능시험을 합격하거나, '한수원 입회' 아래 성능시험을 통과하면 이를 납품 실적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을 충족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원자력연구원은 "우리는 공인인증기관이 아니며 시험증명서를 발급해준 사실도 없다"고 발을 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한수원이 공급자 선정 근거로 제시한 심사자료는 '허위'다. 

◇ 차별 속에 진행되는 한국 원전 잔혹사

원전 비리와 더불어 원전 노동자의 열악한 실태와 인근 주민들의 피해도 잔혹사 중 하나다.

직원의 실수로 원전이 멈추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고(故) 김용균씨의 죽음으로도 드러난 위험의 외주화가 원전에서도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문제는 노동자의 고용안전 뿐 아니라 원전 안전과도 직결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초 기준으로 원전 반경 30km 안에 살고 있는 인구는 약 420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약 5100만명)의 8.2%에 해당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이들은 늘 피폭 불안감에 시달린다. 원전과 인근주민 암 발병 인과관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법으로 정한 각종 지원책이 있지만 현장의 체감은 크지 않다. "발전소 돔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침에 깨고 싶다"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의 소박한 바람은 아직도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장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원전은 차별구조 아래 존재한다.

◇ 함께 사는 길은 탈원전뿐

원전 안전 신화의 허구와 원전 마피아의 이권 구조를 밝히는 ‘한국 원전 잔혹사’는 현직 언론인인 김성환, 이승준 한겨레 기자가 쓴 취재 기록이다. 

이들은 원자력에 대한 사회의 감시와 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현실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사건들의 구조적 배경과 원인 그리고 원전을 운영하는 노동자들과 그 주변의 문제를 깊이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전문성과 특수성이란 갑옷을 두른 채 원전신화를 지키려 비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원전 마피아들의 전횡과 비리를 고발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왜곡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꾀한 ‘원전 마피아의 이권 구조’도 분석한다. 더불어 원전으로 고통받는 하청 노동자와 지역 주민 등 사회의 약자까지 조명하며 원전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는 해외사례를 통해 탈원전이 국제적 문제임을 지적한다. 

과연 자유한국당의 주장대로 원전은 백년대계 에너지일까.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공동체’를 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원전 잔혹사'는 미래 세대들에게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고민하는 이들에게 ‘함께 사는 길’은 탈원전 뿐이라고 답한다. 

 

◆ 신간소개

 

◇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은 올해로 데뷔 33년을 맞은 송재학 시인의 열번째 시집. 그는 시집을 펴내며 "옛 소설 '슬프다―풀 끗혜 이슬'은 세창서관에서 1935년에 발간된 딱지본 '미남자美男子의 루淚'에 수록되었었다. 일제강점기의 궁핍한 시인 진명의 이야기는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역대 딱지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목을 만들었다. 그 이름에 기대어 열번째 시집을 궁리했으니 내 식민지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독인 셈이다"라고 전한다. 송재학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이루어진 특별한 시 세계가 유감없이 펼쳐진 시집이다.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기형도의 30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시들을 오롯이 묶은 기형도 시 ‘전집(全集)’이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들 97편 전편을 모으고,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새롭게 구성한 책이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함께 생전의 시인이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여전한 길 위의 상상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워지는 기형도 시의 비밀스런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그의 시를 찾고 또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이유일 것이다.

 

 

 

ya9ball@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