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서민부담 이유로 들며 “굉장히 신중한 검토 필요”
‘장기적 과제여서 신중 검토’ 기재부 입장서 한 걸음도 안 나아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개 국책 연구기관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개 국책 연구기관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민 부담을 이유로 경유세 인상에 난색을 표했다.

홍 부총리는 12일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데 대해 “굉장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날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에서 8개 국책 연구기관장과 가진 첫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경유세 인상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경유를 사용하는 많은 승용차와 화물차 운전자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호 문제를 정부로선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유차로 생계를 영위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으로 보인다. 서민부담 때문에 당장 경유세를 인상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앞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경유세 인상 권고 내용을 담은 '재정개혁보고서'를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강병구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은 경유세 인상안에 대해 “미세먼지 저감, 환경보호를 위한 친환경적 세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는 가격 체계로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은 국립환경과학원(2014년 기준) 분석과도 궤를 같이한다. 국립환경과학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국내 배출원 중 도로이동오염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다. 도로이동오염원 중 초미세먼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경유가 99.7%(9190톤)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경유의 환경피해 비용이 휘발유나 LPG보다 훨씬 많지만 가격은 휘발유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경유세를 인상하란 요구가 비등하는 건 이 때문이다. OECD는 지난해 6월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8)’에서 한국의 평균 대기질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경유와 휘발유 세금의 격차를 줄이는 등 환경 관련 조세를 강화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재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여론도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환영하고 나섰지만 기재부는 ‘민감한 사안이라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실제로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 알려진 직후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경유세 인상은) 경제,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유세 사안은 장기적 과제로 신중하게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경유세 인상안을 넣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민감 사안이라 일단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관계 기관과 공동으로 연구용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재부 입장은 사실상 ‘시간 벌기’로 비친다. 경유세 개편안을 내년부터 시행하려면 오는 8월쯤 세법개정안에 포함돼야 하는데, 연구용역이 수개월간 걸리고 연구용역안 검토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세법개정안에 경유세 인상안이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년이나 2021년에도 법안 통과는 장담할 수 없다. 내년엔 국회의원 총선거가, 2021년엔 대통령선거가 열리는데, 여야 이해관계가 엇갈리려 쉽사리 통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총대를 멜 정당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 만큼 기재부로선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마저 거부하며 ‘시간 벌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서민부담을 이유로 경유세 인상은 굉장히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홍 부총리의 발언 역시 그간 기재부의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jdtimes@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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