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고압 설치 반대를 위해 국회 토론회장을 찾은 인천부평 주민들.(박소희 기자)
특고압 설치 반대를 위해 국회 토론회장을 찾은 인천부평 주민들.(박소희 기자)/2019.01.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언론 보도를 보고 있으면 국회는 일 안 하면서 세비만 챙겨가는 정치인들의 '막말 경기장' 같다. 특히 지도부의 주요 회의는 정책을 다루기보단 막말의 향연만 쏟아지기 일쑤다. 하루 보도 할당량을 채우느라 제대로 정책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단 언론의 변명은 구차하기만 하다. 기자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따옴표 저널리즘'은 부조리를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생산량 중심' 언론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비상식적인 말만 뱉는가. 그렇지 않다. 일부 언론이 당 지도부 회의와 국회 복도에서 오가는 정치인들의 힘겨루기를 다루는 동안 국회 한켠에선 사회 구성원들의 '애'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화가 오간다. 바로 토론회에서다. 

국회에는 18개의 상임위원회가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470조원에 이르는 국가 재정을 심의한다. 오는 13일 통과를 앞둔 미세먼지 관련 법안도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것이다. 가령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하려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소관 상임위가 행정안정위원회다.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제 도입을 위한 '대기관리권역 대기질 개선 특별법' 개정은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이다. 각 위원회는 수시로 회의를 열어 법률안을 심사한다. 

국회의원들은 법을 새로 만들거나(제정) 고치기(개정) 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진행한다. 한 주에 한두 번 국회 토론회에 찾아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체로 현안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두면 정책이나 현상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첨예한 사안이 다뤄지면 주민이 토론회장을 찾기도 한다. 가령 최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고압지중송전선 설치로 빚어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사업자인 한국전력, 소관부처인 산업부, 시민단체 등을 불러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그날 플로어는 부평과 인천 지역 주민들로 가득찼다. 저마다 '특고압 설치 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전은 핑계만 대지 말고 아파트를 우회해 설치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라"고 말한 설 의원의 쓴소리를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짧은 시간에 두세개 의 발제를 끼워 넣다보니 플로어 토론이 너무 촉박하다. 플로어에서 나오는 질문은 생활과 직결되기에 구체적이다. 플로어의 질문에 정부 측 토론자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행 부서의 정책 이해 수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부처 관계자는 대체로 욕 먹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민과 함께하는 토론회가 가시방석이다. 이 때문인지 국장급 자리에 과장급이 대신 오기도 한다. "돌아가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공허한 관계자 말을 듣고 당시 세 분 할머니가 “이제 뭔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냐”며 속삭이던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대다수 의원도 축사가 끝나면 기념사진만 찍고 토론회장을 빠져나간다. "우리 사정을 국회의원이 듣고 가야지 사진만 찍고 가려면 토론회는 왜 열었어"라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한다. 변명은 똑같다. "뒤에 일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보좌관이 듣고 있으니 염려 마라." 제때 나가지 못해 안절부절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야당 의원까지 있었다. 오죽하면 끝까지 남아 듣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무수히 많은 토론회를 진행해봤지만 이렇게 끝까지 남아서 피드백까지 주는 의원은 처음"이라는 말이 좌장 입에서 나왔을 정도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토론 자리는 생각보다 많다. 정책간담회, 입법토론회 등 하루에도 수십 건이 열린다. 그 자리에 '보고자'가 아니라 '결정권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활용·폐기물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던 고형연료(SRF) 사업자의 하소연은 새길 만하다.

"당신네들은 정책을 폐기한다 안 한다 사인 하나만 하면 끝나지. 당신들 펜 끝에서 우리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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