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展'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환경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지난달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성곡미술관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근대 미술사에 큰 획을 남긴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가는 예술로 사회를 이야기하고 지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동시대 인류의 모습과 생활 양상, 사회적 현상을 기록하고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9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떤 것을 기록하고 있을까.

미국 출신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 개념미술, 영화, 비디오아트를 넘나들며 현대 사회, 특히 전 세계의 공통과제인 환경과 기후문제를 기록한다. 범람하는 플라스틱 폐기물, 인류에 의해 멸종 위기에 놓인 알바트로스, 풍족한 물자로 인한 과소비 등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볼 수 있게 하고,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

지난달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전에 방문하면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는 △떠나온 곳은 다르나 우리는 하나 △멀고 가까운 숲 △바다로부터 온 편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 △알바트로스의 꿈 등 6개 섹션으로 나눠진다. 각 섹션마다 사용한 표현 도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32만개의 백열전구로 만든 '백열전구들, 2008'. 비효율적인 전기 사용으로 매 분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전기의 킬로와트수(㎾)와 동일하다.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시야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 숫자가 주는 무게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고사성어와 크리스 조던의 작품은 일맥상통한다. 언론에서 수없이 강조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폐기물 양과 환경오염의 심각함이 와닿지 않는다면 크리스 조던의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대표작 '숫자를 따라서' 시리즈는 멀리서 바라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오브젝트가 쌓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2008년작 '백열전구들'은 별이 촘촘히 박힌 우주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백열전구들이 보인다. 이 작품에 사용된 전구의 개수는 32만개로, 비효율적인 전기 사용으로 매 분마다 미국에서 낭비되는 전기의 킬로와트수(㎾)와 동일하다.

2011년작 '비너스'는 르네상스시대 화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을 모티브로 24만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해 완성했다. '24만'이라는 숫자는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비닐봉지의 개수를 말한다.

5만개의 비닐봉지로 그려진 '고래'는 전 세계 해양 1평방마일마다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의 예상 숫자를 의미한다. 복잡한 회로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컵'들은 미국의 항공기 운항에 6시간마다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100만개로 표현했다.

캔버스 안에 좁쌀처럼 잘게 그려 넣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소비를 하고 있고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크리스 조던 미드웨이 시리즈 '알바트로스, 2009'.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아름다운 섬 '미드웨이'에서 마주한 알바트로스의 비극

크리스 조던의 대표작 '알바트로스'는 환경오염이 빚은 비극과 슬픔을 낱낱이 드러낸다. 작가는 태평양 미드웨이섬에 8년간 머물며 알바트로스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사진으로 담았다.

가장 높이, 멀리, 오래 나는 새로 알려진 알바트로스는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플라스틱을 배에 가득 채운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부패가 진행돼 흙과 엉킨 알바트로스의 주검 속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은 조금도 형태가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사진의 연장선인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의 꿈'에서는 이들의 비극이 더욱 자세히 기록된다.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한 어미 알바트로스는 새끼에게 날아가 입에 쓰레기를 가득 넣어준다. 하루 종일 배를 곯은 새끼만을 생각하는 어미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크리스 조던은 "이 사진과 영상을 찍을 때 조작하거나 플라스틱 뚜껑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이미지 편집도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알바트로스의 일생을 담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체코와 독일 국경 지대에 있는 슈마바 국립공원의 숲에 눈 내린 풍경. (사진 크리스 조던 제공)

◇비극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자연 

전시관에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크리스 조던의 최근작인 '슈마바 숲'은 체코와 독일 국경지대에 있는 슈마바국립공원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여러 장의 숲 사진이 걸린 전시관을 걷다 보면 마치 나무 사이에서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이곳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슈마바 숲은 120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청정한 숲이었지만, 최근 걷잡을 수 없는 벌목이 진행돼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크리스 조던은 작가 노트를 통해 "현대인이 사랑하는 사진과 영화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너머에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실상들도 함께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개별적인 삶의 가능성과 특이성을 살리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자 했다. 또한 생태계는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각각 삶의 자리를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 조던전은 성곡미술관에서 오는 5월 5일까지 진행되며 서울을 진행해 연말까지 부산, 순천, 제주 순회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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