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이반 일리치 저/신수열 역 | 사월의책 | 2018년 07월 20일
이반 일리치 저·신수열 역·사월의책·2018년 07월 20일

 

이 책의 한 단락 : 속도를 강요하는 사회는 수송에 이익을 주기 위해 자력 이동을 가로막는다. 고속 수송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의 기본적 필요도 충족시켜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각 개인의 생활 리듬만 빨라지는 것이다. 모든 일상생활이 동력에 의존하는 순간부터 교통은 수송산업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인간의 타고난 이동능력에 대해 수송산업이 행사하는 이 통제력은 (…) 특성상 은밀한 데다 견고하게 구축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근본적 독점’(radical monopoly)이라 부른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신속성과 효율성은 현대 문명이 낳은 산물일까.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사실상 자전거보다 ‘느리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과잉소비에 기초한 현대의 수송이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인간의 자율 능력을 해치는지 고발한다.

◇자전거는 ‘공정’하다

에너지 과잉소비에 기초한 현대의 수송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인간의 자율적 능력을 해친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저자 이반 일리치는 “필요할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수송의 특성은 소수의 시간 절약을 위해 다수의 시간을 빼앗는다”고 말한다. 교통량이 무제한 늘어나면 극소수 사람이 소비하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수송과 관련한 다방면의 시간 소요는 반대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거리를 기차로 혹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과 직항 비행기에 몸을 싣는 사람이 서로 다른 경제력을 갖는 것처럼, 빠른 속도는 소수 인간의 시간을 고액의 가치로 자본화하는 대신 다수의 시간을 희생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쳇바퀴 돌 듯 출퇴근과 대중교통에 허덕이는 사이, 소수는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빠르게 이동하거나 비행기를 타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1974년 미국 기준으로 해마다 전체 비행거리의 5분의 4를 1.5퍼센트의 인구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속도를 마음 놓고 구입할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한다.

모든 자동차가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는 없다. 성능 좋은 차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속도다. 대다수의 사람은 보통 수준의 연비를 가진 자동차에 갇혀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는 소수의 시간을 엄청난 평가액으로 자본화하기 때문에 수송속도가 높아질수록 공평성은 저하된다.

제한받지 않는 속도는 시간을 절약한다는 점에서 값이 비싸게 먹히지만, 그것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러시아워에 시달려 녹초가 될 때 사람들은 차량 정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속도 지본가’가 되길 희망한다. 대부분 사람은 이런 경우 자기 호주머니 돈을 꺼내 차에 쓸 수밖에 없지만, 기업 선단의 지휘자들이 유류비를 회사에 청구하고 렌터카 비용을 업무비로 처리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일리치는 인도 뭄바이의 경우를 예로 든다. 이곳에서 본인 소유의 차를 가진 사람은 대개 한 주에 한 번 차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다른 주의 주도를 다녀온다. 두 세대 이전까지만 해도 차가 없어 1년에 단 한 번, 일주일을 소비해 다녀왔던 것에 비하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본인 소유의 차를 가진 인도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자전거로 이동하는 대부분 사람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한국의 9호선은 일리치가 말하는, 속도의 횡령죄를 보여주는 예다. 우리는 9호선 일반 열차에서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려 잠시 정차하겠다’는 방송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더 빠른 수송에 몸을 맡긴 사람을 위해, 그렇지 않은 이들의 시간 소모가 늘어나는 경우다.

◇속도에 ‘횡령죄’를 선고하다

과연 우리는 비행기의 발명으로 한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경로가 ‘단축’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동차를 구매했다고 해서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리치는 속도에 의해 오히려 생활시간을 '횡령'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표준적인 미국 남성이 1년에 차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은 1600시간 이상이다. 주행중이거나 정차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차를 사기 위한 계약금, 월부금을 버는 시간은 물론이고 연료비, 보험료, 세금, 교통위반 시의 벌금을 내기 위해 노동시간의 상당 부분을 바친다. 이 시간을 모두 합치면 하루 평균 깨어 있는 시간인 16시간 중 4시간을 소모한다. 결국 표준적인 미국인은 1년에 1만 20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 1600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치는 이것을 시속으로 치면 7.5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다고 주장한다. 시속 7.5킬로미터면 수송산업이 발달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속도다. 자동차 등록대 수 2000만 대가 넘는 한국도 미국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일리치는 이러한 이유로 수송의 가속화에 ‘시간 횡령죄’를 선고한다.

도로 건설과 관리에 드는 비용,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계산하면, 자동차는 결코 자전거보다 빠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나 전철, 버스 없이는 아예 이동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동력화된 수송의 노예가 됐다. 자전거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삼는 것은 현대 문명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일리치는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야말로 에너지 낭비와 속도의 무익함을 대신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라고 강조한다.

자전거는 보행속도인 시속 5~6킬로미터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에너지는 보행의 5분의 1밖에 쓰지 않는 최고의 이동수단이다. 화석연료를 쓰는 모든 기계보다 열역학적 효율이 높을 뿐 아니라 자전거 주행에 필요한 공공시설의 건설비는 자동차의 것에 비해 엄청나게 적다. 높은 공간 활용도도 자전거를 적정 기술과 적정 에너지의 모범적 사례로 만들어주는 장점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결국 에너지 위기나 생태 위기와 같은 표면적 이유를 넘어 ‘자전거’로 상징되는 적정에너지, 적정기술이 어떻게 한 사회의 행복에 이바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신간소개

 

흰 티티새 이야기 이 책은 프랑스의 서정시인 뮈세가 자전적인 요소를 담아 쓴 짤막한 우화로, 흰 깃털을 갖고 태어난 티티새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남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당해야 했던 흰 티티새가 ‘다름’이 바로 자신만의 ‘특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생의 반전을 이룬다.(지식을만드는지식·102쪽·1만1000원)

 

 

 

에스키모인 이야기 에스키모인은 북극, 캐나다, 그린란드, 시베리아의 북극 지방에서 어로·수렵을 하며 살아간다. 전통적으로 처가살이를 해 아내의 아버지, 딸의 남편, 자매의 남편, 아내의 형제 등이 한 사회구성체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었다. 그들은 투쟁과 모험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 에스키모인 설화 68편을 통해 극지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그들의 삶과 문화에 한 걸음 다가가 보자.(지식을만드는지식·446쪽·2만2000원)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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