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80여명의 주민들 중 약 30명이 암에 걸려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장점마을(전북 익산시 함라면)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익산시가 대응에 나섰다. 집단암 원인으로 꼽히는 비료공장 ‘금강농산’ 내부와 마을 인근에서도 TSNa(담배특이니트로사민)가 나와 지난달 26일 공장을 경찰에 비료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은 “고발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거의 20년간 강건너 불구경하던 익산시가 언론을 의식해 이제야 조치에 나섰다”며 한숨을 내쉰다. 최재철 장점마을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장점마을은 행정의 외면으로 고장난 벽시계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한탄했다.

장점마을 금강농산 입구(주현웅 기자)2019.3.3/그린포스트코리아
장점마을 금강농산 입구(주현웅 기자)2019.3.2/그린포스트코리아

“저희 마을엔 지금 시체 썩는 냄새보다 더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11월 장점마을의 한 주민이 익산시에 제기한 민원 내용 일부다. 그는 당시 막 들어선 금강농산을 악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익산시가 각종 환경조사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익산시의 대답은 이랬다. “악취 측정을 실시했으나 배출허용기준 이하로 적합하였음.”

마을주민들은 의아해했지만 익산시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했다. 낮에는 하얀연기를 내뿜고, 밤에는 검은연기를 내뿜는 금강농산은 마을 주민들이 하루 종일 창문조차 열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초등학생은 일기에 “숨이라도 쉬고싶다”고 적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익산시와 함께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했다. 금강농산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의 안간힘도 썼다. 그러는 동안 익산시와 전북도는 입을 다물었다. 수년 간 수차례에 걸친 제기된 민원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 10년이 흘러 2010년 9월 기어코 사달이 났다. 마을의 저수지에서 물고기가 집단폐사한 일이 발생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다. 마을에서 수십년을 거주한 주민들은 “살면서 이런 끔찍함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문제가 발생하자 전라북도 보건환경연구원과 익산시는 조사에 나섰다. 저수지 물의 수질과 성분 등을 파악했다. 그 결과 ‘문제없다’고 나왔다. 한눈에 봐도 시커먼 물로 가득 찬 저수지였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2010년 9월 장점마을 저수지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한 일이 발생했다.(임형택 익산시의회 의원 제공)2019.3.2/그린포스트코리아
2010년 9월 장점마을 저수지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한 일이 발생했다.(임형택 익산시의회 의원 제공)2019.3.2/그린포스트코리아

그 시기 장점마을에서 벌어진 상황은 마치 “이래도 문제가 없냐”고 ‘몸소’ 되묻는 듯했다. 물고기가 아닌 사람이 줄줄이 사망하기 시작했다. 2010년 한 해에만 마을주민 10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에 걸리지 않은 주민들은 피부병에 시달렸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밭에서 일하다가 엠뷸런스에 실려 가는 주민이 나왔고, 피가 날 정도로 피부를 긁으며 잠 한 숨 못자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다가 부부가 하루에 죽고, 부자가 함께 세상을 뜨고, 전원 생활하러 온 부부도 덩달아 암에 걸렸다.

현재까지 마을주민 80여명 중 약 30명에 암이 발병했다. 이들 중 17명이 사망했다. 익산시는 이 같은 참사가 벌어지는 동안 아무 조치도 안 취했다. 오히려 마을주민들이 직접 원인규명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6일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굴착기를 동원해 금강농산 곳곳을 살핀 결과 4m가 넘는 폐기물 저장탱크가 나왔다. 갖은 발암물질을 포함한 불법폐기물이 땅속에서 수백여톤 발견됐다.

폐쇄된 금강농산 내부의 모습(주현웅 기자)2019.3.2/그린포스트코리아
폐쇄된 금강농산 내부의 모습(주현웅 기자)2019.3.2/그린포스트코리아

그 사이 금강농산은 문을 닫았다. 사장 이모씨가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아들에게 공장을 맡겼고, 아들은 시설을 그대로 남겨둔 채 금강농산을 부도처리하고 잠적을 감췄다. 이로써 익산시가 뒤늦게 금강농산과 마을 집단암 발병 상관관계를 조사할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들은 익산시가 공장 일대 토양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내부 시설들을 전부 살필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익산시는 여전했다. 원인 규명은 고사하고 문제에 대한 은폐시도를 수수방관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다.

금강농산 설비는 경상북도 상주시에 소재한 M비료업체가 사들였는데, 이 업체는 해당 설비들을 차례로 빼냈다. 마을주민들이 “금강농산 설비들이 줄줄이 공장 밖으로 유출되고 있다”며 익산시에 항의했다. 익산시는 M사가 반출을 완료한 뒤에야 ‘반출금지’ 명령을 내렸다.

무책임한 행정으로 집단암 발병 문제를 키워 온 익산시는 최근 금강농산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는 마을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사실상의 ‘첫 조치’로 최초 민원제기 후 약 18년만이다. 지자체가 대처에 나섰음에도 많은 이들이 쓴웃음 짓고 고개를 떨구는 이유다.

일각에선 그간 사태에 무관심했던 지자체 역시 직무유기를 들어 처벌대상이라고 말한다. 한 주민은 “환경부 장관도 직접 마을에 내려와 주민을 만났는데, 정작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마을에 단 한 번도 안 왔다”며 “문제를 외면해온 지자체 역시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강농산과 마을 곳곳에서 TSNa가 검출된 것을 두고 KT&G에 대한 책임론도 급부상하고 있다. TSNa는 담배에만 존재하는 유해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를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KT&G는 2008~2015년 기간 동안 금강농산에 담뱃잎찌꺼기(연초박) 2400톤가량을 퇴비원료 목적으로 공급했다. 하지만 금강농산은 연초박을 퇴비 대신 유기질비료 원료로 활용, 그 과정에서 가열공정을 거쳐 담배연기를 발생시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chesco12@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