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경유세 인상 권고안 거부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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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경유세 인상 권고가 현실화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정개혁특위는 경유세 인상 권고 내용을 담은 '재정개혁보고서'를 지난달 26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강병구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은 기자회견에서 경유세 인상에 대해 “미세먼지 저감, 환경보호를 위한 친환경적 세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는 가격 체계로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경유세 인상 입장을 담은 ‘재정개혁보고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환경단체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발표해 “국내 경유차 비중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경유세 인상은 경유차 감축을 통한 미세먼지 저감과 시민 건강 보호를 위한 올바른 대책”이라며 “정부는 이제껏 미뤄왔던 경유세 인상에 대한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단체는 재정개혁특위 권고는 경유세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한국의 휘발유 대 경유 상대가격은 100:85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OECD 평균 수준(100:92)보다 현저히 낮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6월 OECD는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8)’를 통해 한국의 평균 대기질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경유와 휘발유 세금의 격차를 줄이는 등 환경 관련 조세를 강화하라고 권고했다”면서 “경유세 조정은 심각한 경유차 증가세를 억제하고 경유차 감축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정개혁특위의 권고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당장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획재정부가 업계·서민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경유세 인상은) 경제,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경유세 사안은 장기적 과제로 신중하게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경유세 인상안을 넣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민감한 사안이라 일단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관계 기관과 공동으로 연구용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유세 개편안을 내년부터 시행하려면 오는 8월쯤 세법개정안에 포함돼야 한다. 연구용역이 수개월간 걸리고 정부가 연구용역안을 검토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세법개정안에 경유세 인상안이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문제는 내년이나 2021년에도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년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고 2021년엔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경유세 인상은 산업계, 즉 정유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서민 등 국민 실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첨예한 사안인 만큼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기재부로선 ‘시간 벌기’에 나선 모양새다. 어떤 식으로든 일각의 반대가 명약관화한 경유세 인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연구용역과 검토 등을 이유로 시간을 번 뒤 내년 이후 여론과 정치권의 반응을 봐가며 집행을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꿍꿍이셈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론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을 거부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경유세 인상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기재부를 겨냥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기재부는 2017년에도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정부 내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유세 인상을 포기했던 바 있다”면서 “하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의 우려와 피해가 점차 커지는 만큼 정부는 경유세 인상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경유세 인상을 넘어 교통·에너지·환경세에 대한 근본적 개편도 필요하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논평에서 단체는 “교통세는 SOC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1994년 만들어져, 세수의 80%는 SOC 건설에 투입되고 나머지 15%는 환경 분야에, 5%는 지역발전에 쓰여 왔다”면서 “교통세를 도로를 비롯한 SOC 건설이 아닌 도시 대중교통 활성화와 공원 녹지 보전 등 미세먼지 저감과 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 재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환경운동연합은 경유세 인상과 연동된 유가보조금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가보조금은 2001년 유류세 인상에 따른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물자동차에게 유류세 인상의 일부를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도입됐다. 경유차 증가에 따라 유가보조금의 규모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6년 2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환경운동연합은 “화석연료 보조금에 해당하는 유가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물류비 현실화와 친환경화물차 전환 등 관련 대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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