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흙-후쿠시마, 죽음에 땅에서 살아가다'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신나미 교스케 지음 | 우상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03월 11일 출간 | 320 쪽 | 사회문제 일반
신나미 교스케 지음·우상규 옮김·글항아리·2018년 03월 11일 출간·320쪽·사회문제 일반

 

이 책의 한 단락:  처음에는 소와 흙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취재해왔지만, 후쿠시마에 와서 많은 소와 소 사육사를 접촉하고 흙투성이가 된 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는 동안 이 둘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소를 위해 흙은 녹색 융단을 깔아줬다. /죽은 소를 위해 흙은 이불을 준비하고 흙의 나라로 불러들였다. /소는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또 소에게 돌아간다. /소는 대지 그 자체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한 목장이 있다. 겨울철 외에는 산과 들에 소가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은어가 서식하는 맑은 계곡을 따라 꽃나무가 수를 놓는다. 완만한 경사의 목장 저 멀리 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수면 위에서 반짝인다. 날이 좋은 날, 여느 목장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당신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다고 치자. 지금부터 당신은 소다. 

굉장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른 소들이 뱃속에서 짜내는 듯한 해괴한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규모 9.0의 대지진이 지나가며 쓰나미가 덮친 곳에 공교롭게 6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전원 공급이 중단돼 원자로를 식혀주는 노심냉각장치의 작동이 멈춘다. 

수소폭발을 시작으로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화재 등이 발생하며 방사성물질이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로 누출됐지만 목장에는 평화로운 풍경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땅을 깡그리 갈아엎은 듯 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주위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정적뿐이다. 

“경계구역 안에서 생존하고 있는 가축은 해당 가축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안락사)에 따라 처분돼야 한다.”

2011년 5월 11일 원자력재해대책본부장인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원전중대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 만에 후쿠시마현 지사에게 내린 지시다. 그렇다. 평화롭게 풀을 뜯던 곳은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당신은 이제 경계구역(원전 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 구역)에 생존한 가축이라는 이유로 살처분 당해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원전 사고 이후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후쿠시마는 이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 됐다. 생존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후쿠시마현 농림수산축산과에 따르면 당시 안락사 처분과 외양간에서 죽은 가축을 포함해 매물된 소가 3509마리다. 

경계구역으로 설정된 지역은 재해대책기본법에 따라 사람이 사는 것도, 드나드는 것도 금지됐다. 출입은 일절 불가능하고, 위반하면 벌금 또는 구류 처분을 받게 된다. 오마루 목장을 운영하던 와타나베 후미카즈는 피난을 떠나기 전 외양간 소들을 방목장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살 수만 있다면 스스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녹색 물이 나오고 있고, 방목에 익숙한 소가 많았기 때문에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소의 모습 말입니까? 자유롭게 어느 곳이든 가기를 바라고 내보낸 것이니 기뻐하는 것 같았고 꽤 활기찼죠.”

사고가 난 지 5개월째. 국가는 “피폭은 본인 책임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일주일에 한 두차례 농민들이 경계구역을 드나들 수 있게끔 허가증을 발급한다. 2015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작 ‘소와 흙’은 원전사고 후 죽음의 땅을 드나들며 소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무엇이 살아간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남아 있는 동물들을 죽였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과 어떤 동물은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일상화된 죽음’을 토대로 각자의 생명을 이어가고 서로 보듬으며 땅과 생명을 살리고 있다. 

우리에게 어떻게 방사능과 싸우고, 어떻게 방사능과 어울릴까를 묻는 귀환 곤란 구역의 소들. 그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원전을 안전하다고 믿는지 묻는다.

◆신간소개

 

정상성의 종말? 기후 대재앙 시나리오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마크 샤피로가 탄소의 숨겨진 비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지역과 어떻게든 그 문제에 대처하려는 지역을 오가며 정치, 경제 및 환경 분야에 일어나는 변화를 끈질기게 추적, 탐구해 집필한 책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주의 메마른 농지를 지나 브라질의 정글로, 세계 최대의 생산 중심지인 중국으로, 유럽의 탄소 거래소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최첨단 범죄의 세계로, 항공기의 탄소 배출에 가격표를 붙이려는 시도가 무역 세계대전을 불러온 항공 산업계로 독자를 이끈다. 그리하여 자신이 밝혀낸 충격적인 진실을 세상에 폭로하고자 한다. <알마·1만8000원>

 

 

◇위장환경주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온 상승은 장기적으로 인류 생존에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카트린 하르트만이 쓴 이 책은 이러한 실패의 원인을 끝까지 파고든다. 그리고 환경을 교묘하게 이용해 끊임없이 탐욕을 채우는 다국적기업과 일부 NGO의 민낯을 고발한다. 다국적기업은 자신들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 어떻게 환경을 이용하는가. <에코리브르·1만7000원>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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