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와 박근혜, 4대강과 ‘예타면제’
그 무한반복의 피해자는 우리 자신

 

청산되는 적폐청산의 '오리진'과 '적폐의 적폐'

적폐청산을 국정기조로 처음 꺼내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세월호참사 14일 뒤 열린 각의에서 참사의 책임을 슬그머니 적폐(악습과 잘못된 관행) 탓으로 돌린 뒤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적폐는 '쌓일' 적(積)에 '폐단' 폐(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상을 지배하는 경쟁과 효율, 탐욕'을 적폐의 원천으로 규정하기도 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도사).

구체적으로 말하든 철학적으로 표현하든, 적폐의 뉘앙스는 거칠고 전투적이다. 적, 폐, 각각의 말이 표출하는 분위기가 우선 그렇거니와, '적'은 원수라는 의미의 적(敵)으로 곧장 연상을 실어 나른다. 적(積)과 적(敵)이 오버랩되면서 적폐는 피아(彼我), 아군/적군을 구획하고, 이전 정권의 일과 사람들을 청산대상으로 돌려세운다. 그렇지만 적폐는 죄가 없다. 그렇게 의미가 확장되도록 기를 쓰고 고음의 쇤 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의 책임이다. 이 또한 '적폐의 적폐'. 

 

4대강사업은 22조원짜리 생태파괴의 적폐

적폐청산 대상으로 엄지에 꼽힌 것 중 하나가 이명박 정부(MB)의 4대강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22일 업무지시 5호를 통해 4대강에 설치된 보의 상시개방과 함께 4대강 사업결정에 대한 정책감사를 지시했다. 보의 상시개방은 4대강 사업(즉 MB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정책감사는 MB라는 '적폐'의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의미한다.

4대강 사업은 우리 강산을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뜨린 대규모 토건사업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이고, 따라서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 5호'는 지극히 순리적이며 상식적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4대강 사업은 22조원의 국민혈세를 들여 만든 생태계 파괴 주범"이라며 환영했고, 정의당은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상식적인 행보"라고 반겼다.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제2의 4대강 사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예타면제' 사업은 24조원짜리 '생태파괴 토건사업'

그로부터 1년 8개월여 흐른 지난 1월29일. 환경운동단체연합인 환경회의는 이런 성명서를 냈다. "정부가 경제살리기 미명 아래 토건사업 확대를 위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려 하고 있다." 이 대목만 뚝 떼어내서 보면 4대강 얘기. 성명서는 격분하여 이렇게 이어진다. '토건적폐'인 예타면제를 즉각 중단하라.

정부가 총사업비 24조원이 넘는 23개 초대형 예비타당성 면제사업을 확정, 발표하자 환경관련 단체와 학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4대강 토건사업과 마찬가지로 예타면제 사업들도 우리 국토 곳곳에 회복불가능한 생태계파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반대에 앞장섰던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명예교수는 저서 '나는 반대한다'에서 "그래서는 안 되니까 안 된다"고 반대의 논리를 명쾌하게 천명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니까 안 되는 것처럼, 멀쩡한 강을 죽이고 자연을 파괴하고 결국 사람을 땅의 끝으로 내모는 대규모 토건사업은 해서는 안 되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요즘 대한민국 정치판의 가장 천한 사자성어 '내로남불'은 "내가 하는데 왜?"라는 안하무인의 창검을 들고 다른 논리와 상식을 일거에 파괴한다. 이번 예타면제가 두려운 것도 '내가 하면 정의'라는 반(反)상식이 작동원리로 읽히는 탓이다. 이는 적폐청산이 낳은 최악의 부산물이다. 적폐청산은 시대적 당위성을 장착하고 있지만 적폐청산이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적폐청산이 곁길로 새 내로남불과 한몸으로 붙으면 제2, 제3의 예타면제 같은 새로운 적폐들을 부끄러움 없이 잉태할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과 내로남불이 달 세뇨(dal segno.도돌이표)를 따라 반복되어 4대강을 지운 자리에 예타가, 예타를 부정한 자리에 4대강이 끝없이 '들어서고야 만다면' 이 땅과 이 땅에 터 잡고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로 인한 처참한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인가. 김정욱 교수는 앞서 말한 책 머리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예타면제 사업에 반대한다.

(2019. 2. 14)

 

management@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