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개정안 전자공청회서 반대 압도적
양잿물 쓰는 접착식 라벨 세척공정 고집
"정부-생산자-재활용업체 카르텔" 주장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환경부가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겠다며 마련한 고시 개정안이 뭇매를 맞는다. 친환경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비접착식 라벨을 사실상 재활용 불가 등급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환경부와 생산자, 재활용 업계로 이어지는 카르텔이 배경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가 지난달 행정 예고한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비접착식 라벨이 재활용 1등급으로 인정받으려면 재질이 비중 1 미만이어야 한다. 그런데 라벨을 비중 1 미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논란이 된 고시에 대한 전자 공청회에는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찬성 2, 반대 101개의 댓글이 달렸다.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대부분 찬성 1~2개가 전부인 전자공청회를 고려하면 흔치않은 결과다.

반대가 이례적으로 많은 전자공청회 결과.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반대가 이례적으로 많은 전자공청회 결과.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고시 개정안이 규정한 비중 1은 물을 기준으로 한다. 비중 1보다 낮으면 물에 뜨고, 비중 1보다 높으면 가라앉는다.

업계에 따르면 비접착식 라벨은 제품 공정상 비중 1 미만으로 만들 수 없다. 비접착식 라벨은 열수축으로 페트병에 접착되는데 이 과정을 위해 들어 있는 필름 때문에 비중 1 미만은 불가능한 수치라는 것이다.

권기재 대한민국신지식인협회 중앙회장은 “이번 고시로 비접착식 라벨 기준이 2등급에서 오히려 3~4등급으로 떨어졌다”면서 “이렇게 기준이 미달하면 재활용 분담금을 과하게 물게 되니 업체는 접착식 라벨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페트병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 포함된 재활용품이다. EPR제도는 생산자가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분담하고, 이를 재활용 업체에 지원한다.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은 생산자로부터 분담금을 받고 자원순환유통센터가 재활용 업체에 이 돈을 지원하는 형태다.

환경부가 지난달 17일 고시한 페트평 접착제 기준.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는 재활용 과정에서 일정온도(85~90℃)와 수산화나트륨(2%)에 반응하여 분리되는 접착제를 뜻한다. (환경부 제공)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가 지난달 17일 고시한 페트평 접착제 기준. 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는 재활용 과정에서 일정온도(85~90℃)와 수산화나트륨(2%)에 반응하여 분리되는 접착제를 뜻한다. (환경부 제공)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는 비중분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유로 일부 재활용업체가 공정에서 세척공정을 운영 중인 점을 들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세척공정은 라벨을 제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페트병 내 이물질, 마개나 마개띠 등의 제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면서 “재활용 공정을 고려하지 않고 개선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설명대로 세척공정이 그렇게 불가피할까. 재활용 업계에 따르면 비접착식 라벨을 사용하면 세척공정 과정을 최대한 간소화할 수 있다. 세척공정까지 가기 전 풍력선별기를 이용해 라벨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페트병 제조업체 대표 A씨는 “풍력선별기 하나 가격이 500만~5000만원 정도다. 비접착식 라벨을 페트병에 사용한다면 소비자가 떼서 버리지 않더라도 풍력선별기 과정에 대부분 떨어져 나간다”면서 “세척공정이 있는 재활용 업체는 국내에 22곳인데 그중 접착식 라벨을 선호하는 업체들의 힘이 막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척공정의 문제는 또 있다. 접착식 라벨을 떼는 세척공정에는 양잿물과 가성소다 등이 들어간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환경부와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 등을 질타한 것도 이런 이유다.

당시 송 의원실이 페트병 세척업체를 직접 방문해 조사한 결과 접착제 사용 페트병을 재활용하려면 90도 전후 양잿물에 약 10회 정도 세척해야 라벨을 뗄 수 있었다. 고온의 양잿물을 위해 화석연료와 전기에너지가 사용되는 점 등을 따져봐도 환경부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비중 1 이상의 비접착식 라벨을 2등급으로 분류하는 규정이 15년째 유지된 점도 지적 받았다. 송 의원은 당시 배경으로 1등급 접착제 생산업체인 헨켈과 환경부,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 등의 유착 관계를 의심했다.

좌측 경사를 타고 올라간 페트병들은 풍력선별기 안에서 바람에 의해 라벨이 분리돼 우측 녹색 망에 담긴다. (유튜브 캡처)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좌측 경사를 타고 올라간 페트병들은 풍력선별기 안에서 바람에 의해 라벨이 분리돼 우측 녹색 망에 담긴다. (유튜브 캡처) 2019.2.8/그린포스트코리아

국감에서 혼줄이 난 환경부는 “늦었지만 고시를 연내 개정하고, 특혜 부분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답했다. 대규모 페트병 생산업체인 롯데칠성음료 측 역시 “연말까지 국내 생산제품에 절취선 방식을 100%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환경부 고시는 국감 약속과는 어긋나는 셈이다. 롯데칠성음료도 여전히 페트병에 절취선 방식 라벨을 도입하지 않았다.

권기재 회장은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는 롯데칠성음료 임원 등 대기업 임원들이 절반이 넘는다. 조합과 자원순환유통지원센터가 환경부와 기업 입맛에 맞게 운영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비접착식 라벨을 쓰면 20만명의 수집상과 150개 선별장에서 풍력선별기를 이용해 라벨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면서 “환경부와 조합 등이 사실상 접착식 라벨을 선호하는 일부 세척 업체를 위한 고시를 마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은 EPR을 책임지는 생산자들이 만든 조합이니 기업 임원들이 들어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환경부는 EPR 책임과 의무를 지정해 달성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뿐”이라고 말했다.

seotive@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