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3년 울진 어민들과 원전 간 갈등

‘환경쿠즈네츠 곡선’이란 게 있다. ‘∩’자 모양으로 생긴 이 곡선은 국가가 일정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면 환경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염된 환경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환경분쟁이 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환경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그린포스트코리아>와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환경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혹시 문제는 없는지, 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한다. 구성은 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형태로 각색했다.[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1997년 경북 울진군. 울진 원자력발전소(원전)의 온배수 출구 인근 양식장에서 어류가 집단 폐사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어민들은 파이프를 통해 해수를 끌어들여 넙치(광어)와 전복을 양식하는 수조식 양식장을 운영했다. 원전은 방류제로 해수를 끌어들여 원자로 발전터빈의 냉각수로 사용, 그 후 온배수는 방류제를 통해 바다에 배출시켰다.

어민들은 어류가 집단 폐사한 이유를 원전이 배출한 온배수 때문으로 봤다. 이에 원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송을 제기했다.

울진군 원전 일대에서 어류가 집단폐사했다. 원인은 폭염에 따른 수온상승, 이런 상황에서 원전이 배출한 온배수 때문이었다.
울진군 원전 일대에서 어류가 집단폐사했다. 원인은 폭염에 따른 수온상승, 이런 상황에서 원전이 배출한 온배수 때문이었다.

어민들

수온이 급격히 높아지면 어류가 폐사합니다. 저희는 자연 해수로 양식장을 운영합니다. 원전은 온배수를 배출함으로써 수온을 높였습니다. 결국 어류의 집단폐사 원인은 원전의 온배수 때문이라고요. 손해배상, 당연한 거 아닌가요?

 

원전

급격한 수온 상승이 어류를 폐사하게 만드는 것은 저희도 압니다. 그런데 양식장 일대 수온 상승이 저희 때문은 아닙니다. 수온은 자연적 원인에 따라 오른 거라고요. 최근 무더위로 인해 수온이 최고 30.8℃까지 오른 적도 있어요. 이 점을 보셔야지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같았지만 고려사항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같았지만 고려사항은 달랐다.

 

1·2심 재판부(2000년 12월)

‘양식장 어류의 집단폐사 원인은 수온 상승’ ‘양식장 일대 수온은 상승했다’ 이 두 가지는 사실로 보입니다.

 

문제는 수온 상승의 원인인데요. 살펴본 결과, 어민들과 원전측의 입장 전부 타당성이 있습니다. 자연적 이유로 수온이 일단 올랐고요, 가뜩이나 오른 수온이 원전의 온배수 때문에 더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원전의 손해배상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할지를 또 봐야 하는데요. 본 법원은 이를 50%로 책정했습니다. 이는 어류의 집단폐사에 관한 책임이 자연적 원인과 원전측 모두에게 있는 바, 그 정도 역시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대법원(2003년 6월)

무더위에 따른 수온 상승, 즉 자연적인 원인이 어류 집단 폐사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약 원전측이 자연적 영향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또 과도한 노력이나 비용 없이 자연적 영향의 위험적 요소 예방을 위한 조치가 가능했다면?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이런 점을 고려해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자연적 원인으로 인한 수온 상승을 원전측이 예상할 수 있었는가. 이를 보면, 어민들은 양식을 시작한 이래 수온 상승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원전측은 경험상 자연적 원인으로 인한 양식장의 피해를 예상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물론 피해 전례가 없었더라도, 만일의 경우는 예상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원전은 양식에 대해서는 비전문가 집단입니다. 풍향을 감안한 온배수의 확산 방향, 속도의 변화, 나아가 양식장 일대 수온 상승까지 예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어민들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원전측에 “온배수를 광어양식에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더군요. 이런 상황이라면 원전측이 자신들의 온배수가 양식장에 피해를 입힐 것이란 예측은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다음으로 원전측이 과도한 노력이나 비용 없이 피해를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원전이 출력만 감소시키면 온배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피고인 울진원전은 설비특성상 출력을 조절해 온배수 온도를 조절할 능력이 없네요. 정상운전 중에 임의로 온배수 양을 조절할 수도 없었고요.

 

특히 어류 집단폐사 당시는 이상고온으로 사회의 전력소비가 급증했을 때입니다. 전력예비율이 2.8%까지 떨어진 상황이었어요. 설령 원전이 출력 감소 능력을 갖췄더라도, 당시의 사회적 상황 특성상 출력을 낮추긴 어려웠을 겁니다. 제한송전을 하면 사회 전체가 입을 피해가 매우 컸을 테니까요.

 

본 법원은 이 같은 점들을 참고해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자연력 기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사항까지 두루 살펴보았으나, 이번 사건은 그런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원심판결 그대로 원전의 책임을 50%로 제한합니다.

이승태 변호사
이승태 변호사

이승태 변호사

 

오래된 얘기네요. 그렇지만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대법원의 물음이 좋았어요. 살펴봅시다.

 

우선 이번 사건의 핵심은 자연 영향과 외부요인이 함께 작용해 피해가 발생했을 시 “손해배상 범위 산정에 자연력의 기여분을 고려해야 하는가”입니다.

 

이전까지는 두(자연·외부) 요인이 복합 작용해 피해가 생기면 불가항력적 요소는 그 자체로 가해한 측의 면책 사유가 됐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인간은 불가항력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회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아무리 불가항력이라도 ‘예견 가능’하고, ‘큰 노력이나 비용 없이 피해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가해한 측은 면책될 수 없음을 판시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회피 가능한 자연 영향은 불가항력이 아니다.”

 

이런 판시는 천재지변 등 자연적 영향이 환경피해 가해자의 도깨비방망이가 될 수 없음을 못 박았단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물론 이번에는 대법원이 원전측의 경험·설비상 여건·사회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책임을 일부로 제한했지만요.

 

참고로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원전측의 손해배상책임 감면 사유로 ‘위험에의 접근 이론’도 적용했습니다. 이 이론은 위험요소가 따르는 곳에 접근해 사업 등을 벌였고, 관련 피해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가해한 측의 책임이 일부 감면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 원전이 먼저 사업을 시작했어요. 어민들은 훗날 그 근방에서 양식을 시작했고요. 어민들이 위험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일을 벌인 것도 사실이라고 대법원은 본 것입니다. 이는 꼭 환경 사안이 아니더라도 평소 알아두시면 좋겠지요?

 

◇이승태 변호사는 제40회 사법시험 합격(1998년), 현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2015.2~2017.2),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2014.11~현재), 한국환경법학회 정회원(2015.7~현재), 환경부 고문변호사(2018.4~현재), 국토교통부 고문변호사(2014.1~현재)로 역임 또는 활동 중이다.

 

이 콘텐츠는 환경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환경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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