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3개 사업에 24조1000억 투입
환경정의 "환경파괴와 주민간 갈등 불러"

한국환경회의는 29일 오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소희 기자)2019.01.29/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환경회의는 29일 오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소희 기자)2019.01.29/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정부는 29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광역자치단체별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17개 시·도가 신청한 33개(61조원 규모) 가운데 23개 사업에 총 24조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시민 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적폐를 생산하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이날 환경정의는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타면제는 균형발전이 아닌 선심성 토목사업 나눠먹기 사업”이라며 "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예타 면제는 새로운 적폐"라고 규정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예타 면제 대상은 수도권과 경남북 내륙을 연결하는 김천∼거제 간 남북내륙철도 사업, 경부와 호남고속철도가 합류하고 KTX, SRT가 교차하는 병목 구간인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 등이다. 정부는 기업과 일자리, 연구개발 투자의 수도권 집중이 이어져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균형 발전을 위해 전략적 투자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경기도 옥정~포천 간 도봉산 포천선 사업 등 수도권 역시 예타 면제에 포함됐다. 

이에 환경정의는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들지만 사실상 ‘토목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위해 수십조원을 지자체별로 나눠주는 셈”이라며 “광역자체단체별 나눠 먹기식 대규모 토목사업 배분은 내년 총선을 앞둔 선심성 투자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토목사업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찬반 세력과 주민, 지자체 간 오랜 대치 국면에 공동체가 무너진다고도 지적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으로 선정된 지역과 탈락한 지역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이번 선례로 모든 지역에서 또다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주장하면 회피할 명분도 없어진다.

환경정의는 “보여주기식 과도한 SOC 재정지출은 지역의 자연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주민공동체를 파괴할 우려가 크다”며 “균형발전이 목적이라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낙후지역에 예산이 배정될 수 있도록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수정하고 각종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비수도권의 공공인프라 사업은 인구가 적고 구매력이 약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사업 경제성이 부족하더라도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효과가 충분하면 종합평가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사업이 2009년부터 5년간 82건, 40조원이다. 실제 예비타당성조사 운영지침에서도 건설사업은 경제성(35~50%)뿐 아니라 정책성(25~40%)과 지역균형발전(25~35%)을 중요한 항목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지역균형발전 효과를 더 중시한다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것이 아니라 예타 평가 항목에 비중을 더 높이는 것을 검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 지역에 필요한 것은 토건예산보다는 주민소득을 지원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발전 계획과 지역밀착형 SOC 사업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완화된 예타 조사 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책적 의의와 경제성 등을 판단하기 위해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예타는 당초 공공청사 신증축, 문화재 복원, 국가 안보, 남북 교류 협력, 재해 복구 등 5개 면제 기준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MB) 정부 시절 지역 균형 발전, 국가 정책적 필요 등이 추가되며 10개로 늘어났다. 당시 4대강 사업 명목을 위해 면제 기준을 완화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지역 균형 발전 등 국가 정책적 필요가 있으면 정책 결정자가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추진할 수 있다. 예타 면제 항목을 확대할 당시 현 여당이 반대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예타 면제가 아니라 면제 기준을 다시 원상 복귀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재정법은 예산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비가 300억 이상 투입되는 사업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정권마다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워 수십조원의 토건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줬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해 2008년부터 5년간 88개 사업, 60조 규모의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했다. 4대강 사업에는 총 22조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으며 사실상 사업의 실패로 투입될 복구 비용은 아직 공식 추산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신 단장은 "국책사업의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리성을 최대한 담보하지 않으니 4대강 사업처럼 엄청난 혈세낭비가 발생한 것"이라며 "예타는 지속적인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동 장치"라고 강조했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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