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에서 만난 사람들

공장 정문에서 바라본 석포제련소의 모습.(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공장 정문에서 바라본 석포제련소의 모습.(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적잖은 이들로부터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정작 차분해 보였다. 오히려 “세간의 날선 비판과 감시에 긴장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며 머쓱하게나마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조사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객관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 봉화군 소재 석포제련소 직원들의 얘기다. 아연괴·황산 등을 주로 생산·판매하는 이곳은 1971년부터 영풍그룹이 운영하고 있다. 공정 과정에서 중금속이 발생,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의혹이 제기돼 환경부와 시민단체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낙동강 상류 환경관리 협의회’가 현재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17일 이곳을 다녀갔다. 조 장관은 당시 “석포제련소 문제는 봉화군과 낙동강 일대 지역 주민들의 생계와도 뗄 수 없어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리는 서울에서 4~5시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경북 봉화군 석포리는 서울에서 4~5시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18일 석포제련소를 찾았다. ‘시골’일 줄 알았는데 ‘오지’였다. 서울에서 승용차 타고 약 5시간을 달려서야 석포리에 닿았다. 다 온 줄 알았는데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20~30분가량 더 돌아가야 그제서야 멀찍이 모습을 드러낸 제련소.

제련소는 멀리서도 커다란 규모를 느끼게 했다. 제련에 쓰일 물량을 퍼 나르는 기차가 ‘뿍’ 소리를 내며 공장 외곽을 오갈 정도다. 여러 굴뚝이 내뿜는 연기도 상당했다. 겉보기로는 ‘환경오염의 주범’ 그 자체였다.

공장 입구조차 찾기 어려웠다. 제련소 관계자에 전화를 걸었다. 제련소 고위 관계자는 “난데없이 왜 왔냐”며 난처해했다. 그는 “네비게이션에는 안 나올 것”이라며 “일단 주민들에게 물어 제2공장 입구를 찾아오시라”고 했다.

물어물어 2공장에 들어서니 불안했다. 굴뚝 연기와 가까워진 게 영 찝찝했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안내를 해주던 제련소 관계자는 “냄새 안 나지예? 저게 연기가 아니고 사실 수중기입니더”하며 안심시켰다. 그는 “냉각수 만든다꼬 스프레이 뿌리는데, 그기 증발해서 저래 됩니더”라고 했다.

공장을 둘러봤다. 우선 차를 타고 1공장 쪽으로 향했다. 석포역, 기차가 달리는 곳이었다. 한 직원이 제련에 필요한 원료가 기차나 트럭을 통해 연간 70만톤가량 반입된다고 설명했다. 그중 아연 생산에 직접 이용되는 건 50% 정도라고.

그 뒤편에 배소·조액공정 시설이 눈에 띄었다. 거대한 물탱크 같았다. 아연 제련의 원료인 정광이 여기서 황산과 산화아연으로 분리된다. 산화아연은 용해 후 침전물 등 입자를 걸러내는 여과과정을 거쳐 아연액이 된다. 커피 제조시 로스팅 과정을 떠올리니 이해가 쉬웠다.

석포제련소는 물관리에 특히 힘쓰고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석포제련소는 물관리에 특히 힘쓰고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윤종영씨의 근무 모습.(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윤종영씨의 근무 모습.(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배소·조액공정 시설 사이에 ‘깨끗한 물, 푸른환경’이라고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수공정 시설이다. 직관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곳인 걸 알 듯했다. 이르면 올해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인 이 제련소가 특히 신경 쓰는 분야가 물 관리다.

정수공정 시설에서 직원 윤종영(42)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15년째 근무 중이다. 여러 공정에서 발생한 폐수의 ph(수소이온농도지수) 등을 관리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배테랑이다. 하지만 그는 일할 때 긴장감이 갈수록 더해진다고 말했다.

윤씨는 “제련소의 물 문제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사회적 관심도 더해지다 보니 부담이 크다”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져 ‘짬밥’을 먹어도 방심할 수가 없어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며 “처음 입사한 15년 전만 하더라도 불편한 점들이 없지 않았는데, 환경단체 분들의 쓴소리 덕분에 펌프나 배관 등 노후화된 시설이 상당부분 교체돼 업무 편의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제련소 전경을 바라보니 굴뚝과 함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하늘색 파이프처럼 생긴 무엇인가였다. 직원들에 확인한 결과 정광을 이송하는 컨베이어였다. 기다란 파이프 안에서 정광이 옮겨지는데, 혹 유해물질이 배출될까 꽁꽁 밀폐를 시켜놓았다고 한다.

파이프 내부에는 음압이 형성돼 있다. 그래서 설령 구멍이 나도 바깥 공기가 들어올 뿐, 안쪽 공기가 외부로 나가진 않는다. 직원들은 내부 물질의 유출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정광을 이송하는 파이프는 공장을 가로지르고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정광을 이송하는 파이프는 공장을 가로지르고 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황산팀 김응두씨.(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황산팀 김응두씨.(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이를 관리하는 부서는 황산팀. 이곳에서는 ‘기러기 아빠’ 김응두(40대)씨를 만났다. 그는 제련소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석포리에는 고등학교가 없어서 자녀를 강원 태백으로 떠나보냈다. 무척 그립지만 일할 땐 워낙 정신이 없어서 사실 그리움도 깜빡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가 맡은 업무의 핵심은 ‘아황산가스의 외부 유출 방지’다. 아황산가스의 대기 배출로 인한 환경적 피해를 떠올리면 김씨의 업무는 중책이다. 그는 “TMS(대기오염도 측정장치)를 하루 종일 모니터링하다 보면 일에 몰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덕분에 유해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문제는 일으킨 적이 없다”면서 “대기오염도의 법적 기준치의 30% 수준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고 은근 자랑했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제련소의 반대편 끝으로 향했다. 제3공장이 나왔다. 제련소가 1500억원가량을 투자해 완성했다는 친환경 원료처리 기술인 TSL(Top Submerged Lance) 시스템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TSL의 핵심은 배소·조액 등 여러 공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산물을 재활용, 시멘트 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슬래그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냥 폐기물’로 보지만, 제련소 직원들은 ‘유해가 무해로 된 자원’으로 본다.

TSL의 핵심은 유해한 폐기물을 무해화하는 것이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TSL의 핵심은 유해한 폐기물을 무해화하는 것이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TSL 공장에서 일하는 김정국씨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TSL 공장에서 일하는 김정국씨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TSL 공장에서는 김정국(36)씨를 만났다. 김씨는 “얼굴 보고 인터뷰하긴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10개가 넘는 모니터를 계속 살펴야 해서다. 본인도 가끔 눈이 두 개뿐이라 원망스럽다고 했다.

5년째 근무 중인 김씨는 “공정이 실시간으로 작동하다보니 챙길 게 많다”며 “펌프 등 설비를 비롯해 현장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을 수시로 체크하는 한편 조업자들과 소통도 이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힘든 일이지만 그가 일에 열심인 이유는 자부심 때문이라고 했다. 본인 부서의 업무는 공익과 사익을 함께 추구한다는 것이다. 폐기물을 자원화 한다는 사회적 기여,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업적 기여가 모두 가능하단 게 김씨의 말이다.

그는 “기업의 생산성, 산업적 부가가치, 노동자의 안전사고, 사회적 환경성을 전부 도맡은 셈”이라며 “전체 공정 과정 중 최종 지점에 있는 역할이다 보니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제련소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씨는 “환경문제가 많이 거론되는데 저 역시 여섯 살 딸아이가 있다 보니 깨끗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며 “그런 측면에서 석포면에 거주하는 데 대한 불안감은 없다”고 했다.

그가 책임지는 현장에서 조업자들은 슬래그에 둘러싸여 일했다. 거리낌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기자에게 슬래그를 직접 만져보라고 권했다. 한 움큼 건네받은 슬래그는 반짝거렸다. 조업자들은 무해함을 강조하며 해변가 모레알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반짝거리는 슬래그.(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반짝거리는 슬래그.(주현웅 기자)2019.1.21/그린포스트코리아

2시간여 둘러본 석포제련소. 각종 환경오염 논란에 휩싸여 정부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곳 노동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란 자신감, 확신까지 내비쳤다.

배상윤 석포제련소 관리본부장은 “공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있지만 몸에 좋은 쓴 약이란 생각으로 철저한 관리에 더욱 힘쓰겠다”며 “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한 소통에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석포제련소의 주변 환경오염 과련 조사는 ‘낙동강 상류 환경관리 협의회’가 작년 3월부터 토양, 산림, 대기, 수질·퇴적물, 수생태, 주민건강 등 6개 분야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조사는 오는 2020년 9월까지 진행된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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