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단상] 읽어내거나(讀法), 깨닫거나(發見)
[삼청동단상] 읽어내거나(讀法), 깨닫거나(發見)
  • 도현행
  • 승인 2019.01.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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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또는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같은 길
발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2019년 해돋이.(사진제공=독자 최기오님)
발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2019년 해돋이.(사진제공=독자 최기오님)

 

양력 새해와 음력 새해의 사이는 해가 바뀌는 중간기간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방금까지 올해였던 날을 순식간에 지난해로 규정하고 새해를 마중하는 양 하지만, 해 바뀜이 무 자르듯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적어도, 달력에 음력을 표기하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해 바뀜에 한 달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거의 모두가 양력 12월로 한 해를 마무리하기는 하지만 양력과 음력의 그 시차를 통해 새로운 해는 지난해의 껍질을 벗고 온전히 새해로 넘어온다.

한 해를 두 번 맞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포부만 거창했던 (양력) 연초 계획이 시동도 걸기 전에 수정 테이프로 덮여질 무렵 (음력) 연초가 한 번 더 기회를 주니 말이다. 그래서 1월 내내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에는 새해설계를 ‘준비 중인’ 사람들로 여전히 붐빈다. 1년을 지탱할 한 문장을 찾기 위해 책을 사고, 결심 따위를 꾹꾹 눌러 쓸 다이어리를 찾는다. 어제와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서원(誓願)의 준비 및 보완기간이랄까.
 
 

조용헌의 인생독법 표지.(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
조용헌의 인생독법 표지.(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

 

사주명리학연구가인 조용헌의 '조용헌의 인생독법(人生讀法)'(2018, 불광출판사)을 ‘때 맞춰’ 읽었다. 명리학연구가에게, 모든 사람의 운명(또는 팔자)은 정해져 있는 것이 마땅하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운명을 읽어내고 또 때에 따라서는 바꿀 수 있는가를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연구로 풀어낸다. 그는 “살면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나’가 된 것”이며 “그 선택을 이끌어 낸 결정 또는 판단이 결국 팔자가 되는데, 그것들은 무의식이 이끌어낸다”고 주장한다.

그 무의식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 의지’인데, 근원을 따져보면 그것이 곧 팔자라는 것. 저자는 팔자(운명)는 정해져 있고 어지간해서는 바꿀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10%의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다. 결국, 결정 지어져 있는 팔자를 잘 파악하는 것, 곧 제 분수를 아는 것을 ‘인생독법’이라고 저자는 명명했다. 여기에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비법을 제시했는데, 그 ‘비법’대로라면 저절로 삶이 달라질 것 같기는 하다. 적선(積善), 좋은 스승, 기도와 명상, 독서 등을 꼽았으니 말이다.
 

인생의 발견 표지.(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
인생의 발견 표지.(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

 

 인생독법과 ‘때 맞춰’ 함께 읽은 책은 옥스퍼드의 석학 시어도어 젤딘(Theodore Zeldin)의 'The hidden pleasure of life'. '인생의 발견'(2017, 문희경 역, 어크로스)으로 번역된 책이다. 28개의 장(章)마다 등장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성찰한다. 시어도어는 ‘기억을 저장하는 뇌 영역과 미래를 생각하는 뇌 영역이 일치한다’는 과학적 발견에 주목하면서 “기억이 빈약하면 이전에 가 본 곳 말고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억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좀 빈약하면 어떤가,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데? 그러나 시어도어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무지도 커진다는 역설을 꺼내든다. 지혜(미래를 구축하는 토대)를 주지 않는다면 정보가 아무리 많다 한들 별무소용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삶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질병은 ‘생전 경직(rigor vitae)’, 곧 호기심을 다 태워버리고 반복적이고 무감각한 일상에 안주하는 정신의 경직상태’라면서, 살아 있기 위해서는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두려움을 떨치고 남들에게 말을 건네라고 권한다.
 

여름 한낮에 광화문 돌담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아주머니는 스마트폰을 보며, 허리가 완전히 굽은 할머니는 땅만 쳐다보며 묵묵히 걷는다. 인생은 이렇게 각자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사진=도현행)
여름 한낮에 광화문 돌담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아주머니는 스마트폰을 보며, 허리가 완전히 굽은 할머니는 땅만 쳐다보며 묵묵히 걷는다. 인생은 이렇게 각자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사진=도현행)

 

‘발견’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는 ‘그 눈이 열리고 무슨 일이든지 사물의 진상이 명백해 지는 것’이라고 풀이한다(출처 인터넷두산백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무지의 상태에서 지식의 상태로 바뀌는 것을 발견이라고 했다. 이전부터 주위에 존재했건만 혜안이 없어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던 그 어떤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발견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각성(覺醒) 혹은 대오(大悟)에 해당한다.

새해를 맞아 다시금 마음의 끈을 동여매는 이유는 지금까지와는 조금이라도 다르게(낫게)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때로는 급격한 방향전환,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며 가야할 길을 차분하게 알아채는 마음챙김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선물로 또 한 차례 주어진 새해 준비기간의 의미이다. 한편 생각하면, 발견이든 독법이든 너무 경직되게 규격적으로 한해를, 인생을 설계할 이유도 없다. 계획대로 안 되기 때문에 다들 발견과 독법을 인생이라는 단어 뒤에 붙이지 않았는가. 결국, 삶의 목적은 삶일 뿐이다.(20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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