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에 손소독제 전성분 공개 요구하자 "영업비밀"
구매자 안전과 성능 비교권보다 우선 되는 기업 이득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871명이 새로 선정됐다. 이들은 옥시와 SK케미칼 등 당시 사태의 가해기업들이 내는 분담금을 수령받게 된다.(그린포스트코리아DB)2018.11.23/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는 국내 유통되는 화학물질을 4만 4000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독성이 파악된 것은 15%에 불과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라벤더 향 가습기 살균제를 사 왔다. 향이 좋다며 가습기 분무구를 얼굴에 맞추고 잠을 잤다. 깨어났을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저 아침이라 목이 잠긴 것으로 생각했다. 

20년을 넘게 사용한 생리대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니 샴푸를 하나 사더라도 멈칫하게 된다. 문제의 기업은 더 비싼 유기농 제품까지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건 안전할까. 저건 괜찮을까. 의심의 일상화다. 곳곳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들이 넘쳐나지만 일일이 따지자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안전한 제품을 사는 건 소비자의 권리인데 귀찮아서 포기하고 싶어진다. 

최근 환경부가 운영하는 생활환경안전정보시스템 ‘초록누리’에 들어가 매일 사용하는 손소독청결제 성분을 검색해봤다. 화면에 “의약외품 성분정보는 정보제공기관 사정으로 인해 정보 연계가 불가능하여,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떴다. 다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돌아온 답변은 “주성분은 에탈올이며 전성분은 영업비밀로 공개가 어렵다”였다. 예상했던 결과다. 

유해성이 의심되면 방법이 있긴 있단다. 화학물질을 특정해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그 성분이 들어있는지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단다.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모르는데, 특정 물질의 함유 여부를 물으면 답해준단다. 이상한 논리였지만 그게 현행법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국내 유통되는 화학물질을 4만 4000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독성이 파악된 것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3만 7000여 개의 물질은 파악조차 안 된 상황인데 어떤 물질을 특정해 위험성 여부를 물어야 할까. 

최근 유통되는 치약에 ‘파라벤무(無)’ ‘트리클로산무(無)’ 표시가 종종 눈에 띈다. 파라벤은 방부제, 트리클로산은 방균제다. 바꿔 말하면 다른 치약에는 파라벤과 트로클로산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2014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발암치약’ 논란이 있었다. 파라벤은 논란에 머물렀지만, 트리클로산은 누적 노출 및 유해성을 고려해 2016년 6월부터 사용이 제한됐다. 트리클로산은 1972년부터 사용된 가장 오래된 항생물질로 40년을 넘게 사용하다 제한한게 불과 3년도 안 됐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우리는 기업과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발암 치약’ ‘발암 생리대’, ‘살충제 달걀’, ‘라돈 침대’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팔기 이전에 안전성을 충실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 화학물질 생산과 소비가 급증하는 만큼 그로 인한 피해 또한 늘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정보 접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가 들려준 부러운 사례가 있다. 국내 한 업체는 은나노 세탁기를 미국 시장에 팔기 위해 '살균력이 있다'고 광고했다가 인체 독성과 환경 독성에 대한 자료를 내라고 해서 해외진출에 실패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 자료 제출 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법안은 'FIFRA'. 살균제나 살충제 또는 쥐약을 하나로 묶어서 '유독물질'로 관리하는 법으로, 업체가 살균 성분이 있다니 정부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은나노 세탁기를 유럽 시장에 출시하려 했을 때 유럽연합(EU)은 살균된 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민물고기류의 생태계에는 문제가 없는지 자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역시 시장 진출을 포기했다. 유럽은 REACH라는 제도를 통해 독성과 용도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화학물질과 그 제품을 시중에 내놓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이라 부른다. 

다행히 최근 '화학제품안전법'이 제정되고,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이 개정됐다. 지난 1일부터 시행돼 이젠 살생물 제품은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품에 함유된 모든 물질 성분, 함량에 대한 신고의무제도 도입됐다. 가습기 참사 이후 내놓은 대책이라 늦은 감은 있지만,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 기업 책임이 강화됐다는 점에선 진일보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 어디에도 소비자들이 위해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전성분을 표시하겠다거나 공개하겠다는 내용은 없다. 

회사가 영업비밀을 주장해 얻고자 하는 이득보다 구매자가 제품 정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격, 안전, 성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 그게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 전성분 표시가 본질은 아니다. 사실 전성분을 공개해도 어떤 성분이 위험한지 정부와 기업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잘 모른다. 40년 동안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이를 닦았던 치약처럼. 다만 시장에 유통되는 제품을 믿고 살 수 있길 바랄 뿐.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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